원래는 새끼돼지를 뜻하는 말
돼지
글_이주희
집을 뜻하는 한자 ‘가(家)’를 살펴보면 집을 뜻하는 상형글자 ‘면(宀)’과 그 아래 돼지를 뜻하는 상형글자 ‘시(豕)’가 합한 형상이다. 사람이 돼지를 가축으로 키우기 시작한 역사는 집을 뜻하는 한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고, 또 그만큼 돼지가 많은 사람들이 널리 키우던 가축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사람이 가축으로 키우는 돼지는 품종이 1천여 종에 이를 정도로 종류가 많다. 하지만 크기와 모양, 색깔이 제 각각이더라도 분류학적으로 가축 돼지는 모두 멧돼지(Sus scrofa)의 자손이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에 널리 퍼져 살던 멧돼지 중 일부가 가축화된 것은 약 1만여년 전으로 본다. 사람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으면서 자연스레 사람과 접촉이 이뤄져 가축화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야생 멧돼지와 집돼지의 유전적 차이는 아주 미미하다.
야생 멧돼지라도 새끼 때부터 기르면 사람을 잘 따른다고 한다. 멧돼지가 쉽게 가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옛날 시골에서는 멧돼지를 잡아 사람을 다칠 수 있게 하는 엄니를 잘라내고 우리에서 키우기도 했다. DMZ에서 군인들이 먹고 버린 음식물을 먹으려고 멧돼지들 모여드는 모습을 텔레비전 자연다큐멘터리에서 본 적 있다. 야생동물 가축화의 역사가 지금도 생생히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행운과 금기, 돼지의 양면성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사야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사업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고사에도 반드시 상에 돼지머리가 올라간다. 돼지가 사람들에게 행운을 상징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지난 2007년은 황금돼지의 해라고 해서 너도나도 그 해에 태어난 돼지띠 아이를 낳으려고 임신계획을 세우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돼지는 매년 많은 새끼를 낳기 때문에 자연스레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게 되었으며 또 고기, 가죽, 뼈, 내장에 이르기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 우리 삶에서 아주 유용하다. 따라서 돼지가 좋은 이미지를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반대로 돼지만큼 부정적인 인식을 받는 동물도 없다. 사람들은 불결함, 못 생기고 뚱뚱함, 우둔함, 비열함, 탐욕스러움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돼지와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문화권에서 나타난다. 중세 유럽에서는 돌돌 말린 돼지 꼬리가 악마를 상징하기도 했다.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들이 살아가는 무덥고 건조한 기후에서 덜 익거나 부패한 돼지고기를 먹고 병에 걸리거나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경험이 숨어 있을 것이다. 핑계 없는 무덤이 있으랴.
돼지처럼 깨끗하고 똑똑해 봐라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돼지에 대한 편견은 이제 거두어야 한다. 특히 돼지가 불결하고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큰 오해다. 나쁜 질병에 걸릴지도 모르는데 불결한 것을 좋아하는 생물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이 접하는 돼지들은 대게 좁고 냄새나는 우리에서 사육되는 것이다 보니 돼지를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돼지는 사육장 안에서도 똥자리와 잠자리를 철저히 구별하며, 목욕을 좋아하는 매우 청결한 동물이다.
그리고 돼지의 지능은 개나 돌고래와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동물 조련사들이 돼지를 훈련시켜보면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행동도 아주 민첩하다고 한다. 개를 이용한 조건반사 실험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파블로프가 처음 실험에 이용했던 동물도 바로 돼지다. 하지만 성품이 사람과 맞지 않아 나중에 개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멧돼지는 울음소리와 킁킁대는 소리를 조합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돼지 새끼는 뭐라 부르지?
우리말에는 가축 이름과 그 새끼를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경우가 많다. 특히 친숙하고 우리 생활에 중요한 가축일수록 더욱 그렇다. 소 새끼는 송아지, 말 새끼는 망아지, 개 새끼는 강아지라고 부른다. 그런데 돼지 새끼를 이르는 말은 왜 없는 걸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원래 돼지라는 말 자체가 새끼 돼지를 뜻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지’는 작은 것을 가리키는 접사다. 동물 이름과 연결하면 그 동물의 새끼를 가리키게 된다. 송아지는 ‘소+아지’, 망아지는 ‘말+아지’, 강아지는 ‘개+아지’의 구조를 갖는다. 그런데 ‘-아지’가 결합하면서 소아지, 말아지, 개아지가 되지 않고 첫음절 끝소리가 모두 ‘ㅇ’으로 끝나는 이유는 ‘-아지’의 본래 형태가 옛이응(ㆁ)을 첫소리로 삼는 ‘-지’였기 때문이다. 즉 옛이응(ㆁ)을 오늘날 사용하지 않으면서 ‘ㅇ’을 ‘-아지’와 결합하는 말의 끝소리에 붙이게 된 것이다.
한편 망아지의 경우는 ‘말’의 끝소리 ‘ㄹ’이 ‘-지’의 첫소리인 ‘ㅇ’과 부딪쳐 동화현상이 일어나 망아지가 되었다. 또 강아지의 경우 ‘갱아지’로 소리 나지 않는 이유는 개의 옛꼴이 ‘가히(가희)’이기 때문이다. 강아지는 엄밀하게 따져 ‘개+지’가 아니라 ‘가히+지’의 구조다. 즉 강아지라는 말 속에는 개를 뜻하던 옛말이 숨어 있다.
돼지는 원래 돼지새끼를 뜻해
옛날에 돼지를 뜻하는 말은 본디 ‘돝(돋)’이었다. 돼지라는 말은 어른 돼지를 뜻하는 ‘돝’과 접사 ‘-아지’가 합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돼지는 ‘돝아지>도아지>되야지>돼지’로 변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돝’이라는 말이 죽은말이 되면서 돼지를 뜻하는 다른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게 바로 ‘돼지’ 또는 ‘도야지’라는 말이다. 새끼에게 쫓겨난 ‘돝’은 지금도 방언 속에 살아 있다. 함경도나 전라도에서는 여전히 돼지를 ‘돝’이라고 부른다. <우리말큰사전>에 따르면 아니꼽고 같잖은 꿈 이야기를 하는 경우에 쓰는 말로 ‘돝 잠에 개 꿈’이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돝’이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글쎄다. 아직까지 그 어원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윷놀이의 도․개․걸․윷․모에서 도가 돼지를 뜻한다는 점을 들어 ‘돝’이 돼지를 뜻하는 한자인 ‘저(猪)’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저(猪)’의 옛소리가 ‘도’이기 때문이다. 또 ‘돝’이 돼지를 뜻하는 다른 한자인 ‘돈(豚)’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 어느 설명도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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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생태> 2009년 11월호 (Vol. 28) pp.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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