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생태 도서

바람이 불어오는 길 The Windward Road

식물인간 2020. 5. 4. 18:07

<바람이 불어오는 길 (The Windward Road) >

아치 카 Archie Carr 지음 | 강대훈 옮김 | 15,000원 | 황소걸음, 2015

 

아치 카 박사가 윈드워드 로드를 쓰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책에서 다룬 거의 모든 주요 산란지, 더 나아가 잠깐 언급되었을 뿐인 소규모 산란지에서도 바다거북을 보호하기 위한 기관들이 조직되어 활동하는데, 이는 놀라운 일이다.

― 「2014년판 추천사중에서

 

 

1. 레이첼 카슨이 찬사한 해양판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침묵의 봄Silent Spring20세기에 쓰인 가장 영향력 있는 책으로,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이 책은 기적의 살충제로 각광받으며 20세기 중반까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양이 사용되던 DDT가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과학적인 증거와 함께 처음 폭로함으로써 DDT 사용을 규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의 가치는 대중에게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환경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침묵의 봄이 출간되는 것을 막으려던 거대 화학 회사와 이들과 결탁한 관료와 학계의 온갖 협박과 방해는 오히려 광고가 되어, 1962침묵의 봄은 제목과 정반대로 요란스럽게 세상에 나왔다. 침묵의 봄이 출간된 후 이전까지는 극소수 전문가들이 사용하던 생태환경이라는 낱말이 일상어가 되었고, 두 낱말은 현대사회의 핵심적인 가치판단의 범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 전설적인 책이 출간되기 6년 전인 1956, 침묵의 봄의 해양편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 침묵의 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게 세상에 나왔다. 미국 플로리다대학교의 동물학 교수이자 바다거북 생태 연구자로 유명한 아치 카Archie Carr 박사가 쓴 바람이 불어오는 길The Windward Road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파충류 마니아이기도 한 저자가 바다거북을 찾아서 카리브 해 전역을 탐사하는 과정을 여행기 형식으로 쓴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한 여행기라면 지금까지 읽히고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길침묵의 봄만큼 뜨거운 반향은 아니라도, 더디지만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왔다.

그 변화는 첫째, 지난 수백 년간 흔하게 잡히던 바다거북이 심각한 멸종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려서 세계적으로 바다거북 보호 운동이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둘째, 서식지 보존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당시에 바다거북을 보호하기 위해서 산란장으로 이용하는 해변의 보존을 역설함으로써 오늘날 생물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분야로 떠오른 보전생물학conservation biology이 탄생하는 길을 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아치 카가 생존에 보존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지역들이 오늘날 대부분 자연보호 구역으로 묶였다.

 

문학상을 받은 바다거북 생태 탐사 여행기

레이첼 카슨이 탐험하는 위대한 자연학자들의 전통을 완벽하게 계승한 글이라고 찬사한 바람이 불어오는 길은 해양학자이면서 탁월한 문장가였던 자연학자가 얼마나 수준 있는 글을 쓸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별난 여행기는 바다거북의 놀라운 생활사뿐만 아니라, 해양생태계에서 바다거북의 중요성을 유려한 문체로 기술한다. 그러나 이 책을 구성하는 10개 장 가운데 바다거북을 생물학적 관점에 무게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첫 장과 마지막 장뿐이다. 나머지 8개 장은 카리브 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겪은 에피소드로 꾸며졌다.

이 책의 묘미는 문화와 인종적인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카리브 해의 문화와 그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맛깔나게 전해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자질구레해 보일 수 있는 일상과 소소한 사건들을 풍성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엮어낸다. 그것은 가난하지만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카리브 해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존중 없이는 도저히 끄집어낼 수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참 읽다 보면 세련된 인류학자의 책을 보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바람이 불어오는 길은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다. 책이 출간된 이듬해인 1957년에 아치 카 박사는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 자연과학 분야의 모범적인 글쓰기를 보여준 작가에게 수여하는 존 버로스John Burroughs 을 수상했다. 1956년에는 이 책의 한 장인 검은 해변Black Beach(이 장은 책이 출간되기 전 마드모아젤Madamoiselle지에 실렸다)이 해마다 북미 지역에서 발행되는 잡지에 실린 글 중에서 우수한 단편 작품을 골라 수여하는 오 헨리O Henry 단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책 정말 재밌다!

아치 카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는데, 그가 아주 유머러스한 사람이라는 점이 빠지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오는 길에서 저자의 유머를 뺀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의 유머는 적의가 없으며 따뜻하다. 대상에 대한 예리하고 진지한 관찰에서 나올 수 있는 유머다. 진솔하고 열정적인 사람의 유머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아마도 이 책이 그토록 오랜 세월 읽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유머가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몇 구절을 인용하는 편이 낫겠다.

 

뭔가 기다릴 때 나무늘보를 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그건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를 읽는 것만큼이나 흥미롭고, 당신을 지치게 하지도 않는다. 한 마리를 30분쯤 보고 있으면 녀석이 잎사귀가 많은 가지로 이동하려는지, 엉덩이나 긁으려는지 알아챌 수 있다. 어떤 행동을 하든 녀석이 실행에 옮기는 데는 다시 꼬박 30분이 더 필요하다.

― 「바르가스 공원의 나무늘보중에서

 

저자가 코스타리카의 한 도시에서 며칠 뒤에 도착할지 모르는 비행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때, 도심 공원에서 발견한 나무늘보를 관찰한 내용이다. 무기 연착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저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음은 바다거북 산란장이 있는 트리니다드 섬의 어느 해변에서 법률을 들먹이며 주차료 2실링을 징수한 관리인 청년에게 불쾌감이 있던 저자가 때마침 발견한 바다거북 알에 눈독 들이는 그 청년을 어떻게 골탕 먹이는지 보자. 당시 바다거북 알을 채취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청년은 깊은 인상을 받을 것 같았고 잠시 말이 없었다. 결국 그는 소심하게 그 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물었다. 나는 다시 묻어주려 한다고 했다.

저는 이 알 요리를 대단히 좋아합니다만, 선생님.”

그가 내게 말해준 법률에 관한 내용을 그에게 다시 들려주었다. 그는 시무룩해 보였고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 알들이 잘못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어쩌면 가져가도 될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나는 다시 법적으로는 제대로 놓인 알과 잘못 놓인 알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거기에서 우울한 논리를 본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가 2실링어치 고통을 받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일단 알을 묻으면 그 뒤의 일은 내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 「패러독스 개구리중에서

 

 

2. 지은이 소개

 

아치 카(1909~1987)는 바다거북 연구 르네상스를 주도한 1세대 바다거북 연구자로, 미국 플로리다대학교의 동물학 교수와 미국자연사박물관의 연구원을 지냈다. 1950년대부터 카리브 해 어부들을 대상으로 방대한 인터뷰, 사르가소 해로의 해양 탐사, 바다거북에 꼬리표를 부착하는 토르투게로 프로젝트 등 다양한 연구를 통해 바다거북의 귀소본능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부화에서 산란에 이르는 바다거북 생활사의 밑그림을 완성했으며, 바다거북의 멸종 위기를 널리 알려 1970년대 국제적인 바다거북 보호 운동과 보전생물학의 탄생에도 크게 기여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길을 비롯하여 So Excellent a Fishe(물고기보다 뛰어난), Ulendo(울렌도) 등 대중과 학계의 호평을 동시에 받은 책을 여러 권 썼다.

 

 

3. 옮긴이 소개

 

강대훈은 서울대학교에서 해양학을 전공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건축세계등의 잡지에 기사를 번역했으며, 아주 특별한 바다 여행』 『홀릭 : 기묘하고 재미있는 수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겼다. 쓴 책으로는 타마르 타마르 바다거북 : 바다거북의 진화와 생활사 이야기』 『바다박사가 될래요(2014 우수과학도서)가 있다. 현재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근무한다.

 

 

4. 차례

 

2014년판 추천사

1979년판 추천사

1979년판 서문

1956년판 서문

 

리들리거북의 수수께끼

바람이 불어오는 길

바르가스 공원의 나무늘보

토르투게로

검은 해변

패러독스 개구리

보카스 델 토로

재규어 해변

선장들

바다거북 무리의 귀환

 

 

5. 추천사

 

탐험하는 위대한 자연학자들의 전통을 완벽하게 계승한 글쓰기

레이첼 카슨

 

바다거북 생태에 관해 지금까지 쓰인 가장 흥미진진한 책

리서치 인 리뷰

 

기질적인 탐험가였던 한 자연학자의 카리브 해 여행기. 저자는 이 책에서 탁월한 이야기꾼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커커스 리뷰

 

열정과 의지, 명료성과 기쁨으로 가득한 책

시카고 트리뷴

 

놀라운 열의와 군더더기 없는 스타일

뉴요커

 

아치 카의 유려한 산문과 힘차고 순수한 비전이 담긴 책. 재미있고 독자의 정신과 영혼을 상쾌하게 씻어준다.”

뉴스 위클리, 멕시코시티

 

이 책은 고전이며 지금도 그 신선함과 생기를 잃지 않았다.”

마린 터틀 뉴스레터

 

진정한 과학적 에세이행과 행 사이로 열대의 더운 바람이 내내 불어온다.”

신시내티 인콰이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