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이름 연구/생물 이름 이야기

절대 죽일 수 없는 전설의 동물, 불가사리

식물인간 2014. 4. 4. 19:37

 

절대 죽일 수 없는 전설의 동물

불가사리

 

 

글_이주희

 

 

 

지난 2000년 우리 극장가에 최초로 북한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1978년에 납북되어 북한에서 활동하던 신상옥(申相玉, 1926~2006) 감독이 1985년 정건조 감독과 함께 만든 작품으로, 우리 민담에 전해오는 괴수를 소재로 한 판타지영화다. 이 영화의 제목이자 영화에 등장하는 전설 속의 괴수 이름이 바로 ‘불가사리’다. 보통 불가사리라고 하면 별 모양의 바다생물을 일컫는 말로 알고 있지만 그 이름의 원조는 따로 있다.

 

 

쇠를 먹는 상상의 동물 불가사리

불가사리는 원래 우리 설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조선 순조 때 조재삼(趙在三)이 지은 <송남잡지(松南雜識)>에 민간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옛날 송도(개성)에 쇠를 먹고 온몸이 불로 덮여있으며 다닐 때마다 불덩이들이 날리는 짐승이 있었다고 전한다. 또 1920년대 초에 발간된 <불가살이전(不可殺爾傳)>이라는 한글소설은 불가사리 설화를 소설로 각색한 것으로 고려 말에 쇠를 먹는 짐승이 나타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쇠를 먹는 짐승인 불가사리에 관한 설화는 전국에 고루 전승되며 조금씩 내용이 다르지만 시대배경을 고려 말 또는 조선 초로 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쇠는 무기, 폭력, 권력 등을 상징한다. 따라서 쇠를 먹는 짐승은 왕조가 바뀌는 것과 같은 혼돈과 기대가 교차하는 혼란한 시대상황에서 민초들이 느끼는 현실인식이 상징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중국 설화에도 쇠를 먹은 상상의 동물이 등장한다. 맥(貘)이라는 짐승은 몸은 곰, 코는 코끼리, 눈은 물소, 꼬리는 소, 다리는 호랑이를 닮았으며 쇠를 먹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고 전한다. 그런데 쇠를 먹는다는 공통의 특징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맥과 불가사리를 같은 것으로 여겼고 불가사리 설화의 원형이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불가사리 설화에 관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불가사리 설화를 우리 고유의 것이며 불가사리와 맥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 근거로 쇠를 먹는다는 특징 말고는 불가사리와 맥 설화의 공통적인 특징이 없고, 불가사리 설화가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아무런 실증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또 맥은 그 형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지만, 불가사리 설화에서 불가사리 형태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는 거의 없다. 따라서 사대주의가 강하던 조선시대에 막연히 불가사리 설화를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고, 맥이 쇠를 먹는다는 이유로 불가사리를 맥과 동일 것으로 인식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아무튼 불가사리(불가살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고 있어 이런 주장이 더 큰 설득력을 얻는다.

 

 

절대 죽일 수 없는 불가사리

불가사리라는 말은 한자어 불가살(不可殺)에서 나온 말이며 말 그대로 ‘죽일 수 없다’는 뜻이다. 불가사리는 불가살(不可殺)에 명사형 접사 ‘+이’가 붙은 말로 ‘불가살이>불가사리’로 음운변화를 거친다. 혹 한자어 그대로 불가살이(不可殺伊) 또는 불가살이(不可殺爾)라고도 썼다. 여기서 이(伊, 爾)는 별다른 뜻은 없고 단지 접사 ‘+이’를 표기하기 위해 음만 빌려온 것이다. 한편 ‘불(火)+가살(可殺)’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불로써만 죽일 수 있다’는 뜻으로, 불가사리는 몸이 쇠로 이뤄졌기 때문에 불로 녹여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불가사리는 모양이 특이하고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신비한 존재를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된다.

 

보통 우리는 극피동물문(Echinodermata) 불가사리강(Asteroidea)에 속하는 생물들을 통틀어 불가사리라고 일컫는다. 전 세계에 1천800여종, 우리나라에는 100여 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가사리는 사람이 먹을 수 없고, 조개나 해조류 같은 자원생물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어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달갑지 않은 존재다. 그래서 그물에 불가사리가 걸려 올라오면 재수가 없다며 잘라서 바다에 버린다. 그러나 버려진 불가사리는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 불가사리는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도 원래대로 재생하고 또 떨어져 나간 부분도 죽지 않고 새로운 개체로 자라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이런 놀라운 재생력 때문에 이 요상한 생물을 죽일 수 없다는 뜻의 전설상의 동물 불가사리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바다생물과 관련한 고문헌이 많지 않아 불가사리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바다생물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정약전(丁若銓, 1758~1815)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불가사리를 풍엽어(楓葉魚)라고 적고 민간에서는 ‘개부전(開夫殿)’이라고 부른다고 전한다. 풍엽어라는 이름은 불가사리 생김새가 울긋불긋하고 팔이 갈라진 모습이 단풍잎 같다하여 정약전이 붙인 이름이며, 개부전이 바로 남서해안 어민들이 불가사리를 부르던 고유한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문헌상으로 볼 때 불가사리라는 이름은 적어도 19세기 초반까지는 바다생물 이름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불가사리를 이르는 다른 말 중에는 ‘오귀발’ 또는 ‘오귀발이’라는 것도 있는데, 발이 다섯 개 달렸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이름인 듯하다. 또 북한에서는 불가사리를 설화 속 괴수 이름으로만 사용하고 바다생물 불가사리는 ‘삼바리’라고 부른다. 삼발이라는 이름은 발이 세 개라는 의미로 불가사리가 이동할 때 2개의 팔(腕)은 진행방향의 뒤로 뻗고 3개의 팔만 앞으로 뻗어 움직이는 생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불가사리는 한자어로 바다의 별이라는 뜻의 ‘해성(海星)’이라고 하며, 영어로도 별과 관련된 ‘스타피쉬(starfish)’ 또는 ‘씨스타(sea star)’라고 부른다. 모두 불가사리의 생김새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갯녹음의 주범이라는 말은 오해

최근 봄여름이면 제주도와 남해 연안의 바다생태계가 황폐화되는 현상이 부쩍 늘고 있다. 바다 속이 아무런 생물도 살지 않는 사막처럼 변하는 이런 현상을 백화현상 또는 갯녹음이라고 한다. 생명이 살 수 없게 변한 바다 속에 엄청난 수의 불가사리만 득실거리는 영상이 뉴스화면을 통해 흘러나오면 사람들은 황폐화의 탓을 불가사리에게 돌린다. 마땅한 천적이 없고, 단단한 껍질에 싸인 조개나 가시에 싸인 성게도 튼튼한 촉수로 집요하게 녹여 먹는 요란한 불가사리의 식성을 생각한다면 완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 바다에서 벌어지는 생태계 교란의 죄를 불가사리 혼자 뒤집어쓰기에는 억울한 면이 많다.

 

갯녹음의 원인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와 발전시설 등에서 냉각수로 사용하고 흘러나오는 온수로 인한 수온 상승, 육지에서 유입되는 오염물질, 대규모 연안 양식 등을 그 원인으로 본다. 여기에 선박을 통해 유입되는 외래종에 의한 생태 교란도 한몫 거든다. 즉 갯녹음 현상의 직간접적인 모든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있다. 특히 수온상승은 큰 위협이다. 바닷물이 따듯해지면 바다의 식물이라고 할 수 있는 해조류가 잘 살지 못한다. 먹이사슬의 가장 아랫부분을 담당하는 해조류가 사라지면 다른 생물들도 연쇄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모든 생물들이 사라진 곳에 그나마 생존력이 강한 불가사리가 마지막까지 남는다. 다시 말해 우리가 텔레비전 영상 속에서 본 황폐화된 바다 속에 우글거리는 불가사리들은 갯녹음의 원인이 아니라 바로 결과다.

 

포식성이 강해 최근 유해 외래종으로 취급되는 아무르불가사리를 제외하면 사실 상당수의 불가사리는 생태계나 인간의 삶에 해를 주지 않는다. 불가사리는 바다 속의 죽은 생물 사체를 처리하는 청소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불가사리의 놀라운 재생능력도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처럼 약자이기 때문에 얻게 된 능력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 연안에 사는 대형 패류인 나팔고둥(Charonia sauliae)은 불가사리의 천적으로 알려져 있어 이를 이용한 불가사리 퇴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참고

1. 김보영, (1994), 『韓國敍事文學에 나타난 ‘不可殺伊’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 김보영, (1997), “不可殺伊說話-硏究史 및 硏究展望을 중심으로”, 도솔어문 제13호,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 이태원, (2002), 『현산어보를 찾아서』, 청어람미디어

4. 정약전 저, 정문기 역, (1977), 『玆山魚譜』, 지식산업사

5. 김인호, (2001), 『조선어어원편람』, 박이정

6. 박수현, (2008), 『바다생물 이름 풀이사전』, 지성사

7. 박수현, “불가사리에 대한 오해”, http://user.chollian.net/~photopsh/STAR.htm

8. 박병상, “불가사리와 해파리가 보내는 경고”, 뉴스메이커 772호(2008년 4월 29일)

 

 

* <자연과생태> 2008년 11, 12월 통합호(Vol. 18) '내 이름은 왜?' 기사 초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