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이름 연구/생물 이름 이야기

큰물에서 노는 생물들, '아무르'라는 이름의 붙는 동물

식물인간 2014. 4. 4. 19:18

 

큰물에서 노는 생물들

‘아무르’라는 이름이 붙는 동물

 

글_이주희

 

 

아무르호랑이, 아무르표범, 아무르산개구리, 아무르장지뱀, 아무르불가사리, 아무르긴수염나방, 아무르딱정벌레, 아무르매미충, 아무르넓적비단벌레, 아무르밑들이, 아무르밤나방… 등 우리나라 생물 이름 중에는 ‘아무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이 많다. 아무르(Amur)는 동아시아 여러 민족들의 오랜 역사와 함께했고 다양한 생명들의 젖줄이 되어 온 아무르강을 가리키는 말로 러시아어 표기 ‘아무르(Амур)’에서 유래해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이름이다.

 

 

아무르라는 이름이 많은 이유

아무르강은 몽골 북부지역에서 발원하여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 아시아대륙과 사할린섬과 사이의 타타르해협으로 흘러들어가는 세계에서 8번째로 긴 강이다. 본류만 2천8백여km에 달하고 제야강, 부레야강, 쑹화(松花)강, 우수리강, 암군강 등 주요 지류들을 합하면 길이가 약4천500km에 이른다. 중․상류 지역은 산지계곡과 넓은 고원지대를 번갈아 흐르고, 하류는 저지대 사이를 흐르며 주변에 광활한 습지를 형성하고 있어 다양한 생명들이 삶의 터전이 되고 있다. 특히 겨울에 우리나라를 찾는 많은 철새들의 여름 번식지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사는 생물 이름 중에 아무르라는 이름이 많이 들어간 데에는 지리적 요인과 역사적 요인이 있다. 즉 지리적으로 아무르지역과 한반도는 가까워 생물상이 매우 비슷하며, 역사적으로는 우리 스스로 생물들을 조사하고 분류학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한 역사가 짧아서다. 그래서 아무르지역에 사는 생물들 중 많은 종류가 한반도로 유입되었고, 또 생물학의 후발 주자인 우리 학자들이 우리말 이름을 지을 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학명이나 이미 다른 나라 학자들이 붙인 이름을 참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물학자들은 새로운 생물을 발견하여 그 이름을 붙일 때, 보통 그 생물의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나 아니면 서식하는 공간적 특성이나 지역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름이나 학명에 아무르라는 말이 들어가는 생물들은 대게 아무르지역이 원산지거나 아니면 처음 발견한 장소가 아무르지역인 경우다. 예를 들어 우리 연안에 가장 흔한 불가사리인 아무르불가사리(Asterias amurensis)는 북태평양에 널리 분포하지만 학명과 국명 모두에 아무르가 들어간다. 아무르불가사리를 처음 신종으로 기록한 사람이 최초 표본을 아무르지역에서 채집했을 것이고 나중에 우리 학자들이 학명을 참조해 우리 이름을 지었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러시아어가 아닌 러시아어, 아무르

그런데 아무르라는 말은 어디서 기원했고, 그 뜻은 무엇일까? 러시아어로 아무르(Амур)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신 에로스(Eros)를 뜻한다. 그리스신화에서 에로스를 아무르(Amour)라고 부르기도 하며, 사랑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아모르(amour)도 그리스어에서 파생했다. 그래서 아무르강을 ‘에로스의 강’ 즉 ‘사랑의 강’이란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아무르강과 관련한 역사적인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의 잘못된 해석이다.

 

아무르(Amur)라는 영어식 표기가 직접적으로는 러시아어 표기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사실 고유한 러시아어가 아니다. 아무르강 하류에 살아가는 소수원주민들이 아무르강을 부르던 이름인 ‘마무(mamu)’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러시아인들이 본격적으로 극동지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며, 그 이전에는 탐험가나 군인, 범죄자나 박해를 피해 도망친 일부 러시아인들뿐이었다. 따라서 아무르지역이 러시아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역사가 매우 짧고, 러시아인들이 진출하기 훨씬 전부터 아무르지역을 포함하는 극동지역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살고 있었으므로 이들 선주민들이 아무르강을 부르던 이름을 러시아인들이 차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르강은 선사시대부터 이들 민족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각 민족과 부족들마다 아무르강을 부르는 고유한 이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만주족은 아무르강을 ‘사할리얀 울라(sahaliyan ula)’라고 부르며 그 뜻은 검은 강이란 뜻이다. 중국에서는 흑룡강(黑龍江)이라고 부르며 검다는 의미에서 만주어 뜻과 비슷하다. 왜냐하면 흑룡강은 청나라를 세워 중국을 지배하게 된 만주족이 붙인 한자식 이름이기 때문이다. 또 몽골인도 검은 강이라는 뜻의 ‘카하라 무렌(khara muren)’으로 부른다. 아무르강 물빛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일만큼 깊고 맑아서일까? 아무르강을 가리키는 많은 말에 공통적으로 검다는 뜻이 들어가는 점이 특징이다.

 

 

아무르는 '큰물'이라는 뜻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점이 더 밝혀진다. 앞서 언급한 한 원주민 말인 ‘마무’라는 말과 몽골어 ‘무렌’과 우리말 ‘물(水)’이 형태적으로 같은 계통처럼 여겨진다는 점이다. 알타이어계통의 많은 언어들에서 물이나 강을 뜻하는 단어를 비교하면 형태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을 뜻하는 만주어로 ‘무케’, 강을 뜻하는 위구르어 ‘무란’ 등이 그 예다. 또 일본어에서 물을 뜻하는 ‘미즈(みず)’도 이에 포함된다.

 

따라서 국어학자 서정범은 아무르를 ‘아’와 ‘무르’가 합친 말로, ‘아’는 물이란 뜻을 가진 다른 고어며, ‘무르’는 우리말 ‘물’과 같은 뿌리의 말이라고 설명한다. 요즘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의 수돗물 상표로 더 잘 알려진 ‘아리수’라는 말이 있다. 아리수는 역사적으로 한강, 압록강, 청천강 등을 가리키던 옛말이다. 아리수의 ‘아리’ 역시 물을 뜻하는 옛말로 아무르의 ‘아’와 같은 뿌리라고 말한다. 서정범의 설명대로라면 아무르는 ‘물+물’의 구조로 다시 말해 ‘큰물’을 뜻한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시베리아와 몽골을 포함한 아무르강 유역에 대한 개발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그런데 걱정인 것은 아무르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멸종한 것으로 보는 호랑이와 표범 즉 아무르호랑이와 아무르표범 같은 대형육식동물들이 야생에서 살아갈 수 있는 동아시아에서 마지막 터전이라는 점이다. ‘큰물’에서 놀던 이들을 앞으로 동물원과 박물관 표본전시실에서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관심과 실천의 폭을 넓힐 때가 바로 지금이다.

 

 

참고

1. 서정범,(2000), 『국어어원사전』, 보고사

2. 조영언,(2004),『한국어 어원사전』, 다솜출판사

3. 국립문화재연구소 편,(2006), 『아무르․연해주의 신비 : 한․러 공동발굴특별전』, 국립문화재연구소

4. “아무르”, 한국브리태니커온라인 www.britannica.co.kr

 

 

* <자연과생태> 2008년 7,8월 통합호 (Vol.16)  pp. 126~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