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이름 연구/생물 이름 이야기

'제비 몰러 나간다', 제비

식물인간 2014. 4. 8. 22:10

전남 무안에서 만난 제비

"제비 몰러 나간다" ,  제비

 

글_이주희

 

 

어린 시절에 자기 집 처마 밑에 제비집이 없으면 왠지 서운한 맘이 들 정도로 집집마다 제비집이 많았다. 일 갔다 오신 아버지는 마당에 새똥이 떨어진다고 얇은 합판을 철사에 묶어 제비집 밑에 대시고 했다. 넓은 신작로를 따라 늘어선 전선 위에는 자칫 촌스럽게 보일 수 있는 과감한 ‘블랙 앤 화이트’ 패션을 뽐내는 제비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오전반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반기곤 했다. 이 정겨운 풍경들이 날 센 제비처럼 사라졌다.

제비는 봄부터 가을까지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여름철새다. 텃새인 참새와 함께 가장 흔하고 친숙한 새지만 요즘은 제비 보기가 정말 힘들다. 그 원인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지만, 정확한 원인은 체계적으로 연구된 바 없다. 그러나 제초제와 농약 사용이 증가하면서 제비가 먹이로 삼는 곤충이나 작은 동물들의 수가 급격히 줄었고 또 토지이용이 집약적으로 변하면서 제비들이 생활하는 유휴지가 줄어서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계적으로 참새목 제비과에 속하는 새는 80종 가까이 되며, 그 중 우리나라에는 처마 밑에 사발 모양의 집을 짓는 제비(Hirundo rustica)가 가장 많다. 이 외에도 북극의 얼음집 이글루를 뒤집어 놓은 듯 한 모양의 집을 짓는 귀제비(H. daurica)도 우리나라를 찾는다. 이 외에 흰털발제비(Delichon urbica)와 갈색제비(Riparia riparia) 등도 볼 수 있지만, 이들은 다른 번식지로 이동하는 중에 잠시 우리나라에서 거쳐 가는 통과 철새다.

 

지지배배 우는 새

한글이 만들어진 직후 15세기에 편찬된 우리말 문헌에서 제비를 뜻하는 낱말이 등장한다. 두보의 시를 한글로 풀이한 <두시언해(杜詩諺解)>와 한자의 뜻을 한글로 풀어 쓴 사전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져비’라로 말이 등장하는데 지금 말로 바로 제비다. 이후에 ‘져비>졉이>제비’로 형태가 변해 오늘에 이르렀다. 초기 한글문헌에서부터 제비라는 낱말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제비라는 말을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문헌이 많지 않아 제비가 어떤 뜻에서 유래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뜻에 관한 한 가지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중국 조선족 국어학자인 안옥규는 <어원사전>(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1989)에서 ‘졉- 졉-’ 우는 제비 울음소리에서 제비가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졉’이라는 의성어에 명사형접사 ‘이’를 붙여 ‘졉이’ 즉 제비로 부르게 되었고, 제비는 ‘졉졉 우는 새’라는 뜻이 된다. 여러 지방 사투리를 살펴보면 ‘벼(禾)’를 ‘베’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말에서 모음 ‘ㅕ’는 ‘ㅔ’로 변하기 쉬우며 같은 원리로 졉이(져비)가 제비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제비가 우는 소리를 본뜬 ‘지지배배’라는 의성어도 그 원형이 ‘졉졉비비’며 제비라는 말과 관련 있다고 설명한다.

 

만주어와 일본어와 같은 뿌리?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주지역의 고유한 언어였던 만주어로 제비를 ‘치빈’이라고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치빈’의 원형은 ‘치비’다. ‘ㄴ’은 나중에 붙었다. 제비와 치비, 아무리 언어적인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도 이 두 낱말이 같은 뿌리를 가졌음을 금방 눈치 챌 것이다. 그런데 바다 건너 일본에서 제비를 이르는 말도 우리말과 비슷하다.

제비는 일본말로 쯔바메(つばめ)다. 쯔바메는 본디 쯔바쿠라메(つばくらめ) 또는 쯔바쿠라(つばくら)의 준말로 알려져 있다. 쯔바쿠라메는 ‘쯔바’+‘쿠라’+‘메’로 의미를 쪼갤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쯔바’와 우리말 ‘져비(졉, 제비)’와 너무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일본학자들 사이에도 ‘쯔바’가 제비의 울음소리를 본 뜬 말이라는 주장이 유력해 두 말의 뿌리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해 준다. 국어학자 서정범은 더 나아가 나머지 부분도 우리말과 관련 있다고 주장한다. 즉 쿠라는 새를 뜻하는 우리말 가리/구리/고리에 대응하고, 메는 우리말 매(鷹)에 대응하는 말로 이 역시 새를 뜻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일본말로 갈매기는 카모메(かもめ), 참새는 스즈메(すずめ)다.

 

제비 몰러 나간다

지난 2003년에 작고한 판소리 명창 박동진 선생이 모 텔레비전 광고에서 부른 ‘제비 몰러 나간다’라는 <제비가>의 한 소절은 너무도 유명하다. <제비가>는 조선 정조 때 전설적인 명창 권삼득(權三得)이 <흥부가>에서 놀부가 제비 잡으러 가는 부분만 따로 때어 지은 노래다. 그는 유력한 양반가문 출신으로 엄격한 신분사회의 모진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판소리에 미쳐 판소리에 모든 것을 건 인물이다.

 

“이때 춘절 삼강 하사월 초팔일 연자 나무는 펄펄. 제비 좇아 나간다. 제비 몰로 나간다. 복흐씨 맺인 그물 에후려 드러메고 방장산으로 나간다…”

 

흥부가 제비 덕택에 부자가 된 사연을 들은 놀부는 시샘과 욕심에 눈이 멀어 제비가 찾아오길 기다렸으나, 제비가 날아오지 않자 직접 제비를 잡으러 길을 나선다. 즉 제비를 후리러, 몰러 나간다는 말은 제비를 잡으러 나간다는 뜻이다. 멀쩡한 제비를 잡아 다리를 부러뜨리고, 또 그 다리를 고쳐준다고 호들갑을 떨고서 제비가 보화가 가득 든 박씨 하나 물어다 주길 바라는 마음. 경제가 어렵다며, 멀쩡한 하천이 죽었다며 살리겠다고 호들갑 떠는 사람들의 속내와 제비 몰러 나가는 놀부의 심보가 무엇이 다르랴. 제비가 이 땅에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우리들 마음이 다 놀부 같아서 일게다.

 

 

* <자연과생태> 2009년 6월호 (Vol. 23) '내 이름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