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이름 연구/생물 이름 이야기

우리 나비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석주명과 <조선 나비이름의 유래기>

식물인간 2020. 5. 3. 22:04

우리 나비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석주명과 <조선 나비이름의 유래기>

 

글_이주희

 

봄처녀와 봄처녀나비

이은상(李殷相, 1903~1982)이 지은 시에 난파(蘭坡)라는 호로 더 잘 알려진 작곡가 홍영후(洪永厚, 1897~1941)가 곡을 붙인 봄처녀라는 가곡은 봄을 대표하는 노래 중에 하나다. 그런데 얼마 전에 텔레비전을 보니 이 가곡의 노랫말에 등장하는 봄처녀가 가리키는 대상이 나비의 일종일도 수 있다는 내용이 얼핏 나왔다. 이른 봄에 한 달 정도 잠깐 모습을 보이는 봄처녀나비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가곡 봄처녀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 했다. 관련 자료를 찾아서 인터넷을 뒤졌더니, 가곡 봄처녀가 봄처녀나비를 소재로 했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글이 몇몇 보였다. 과연 그럴까?

 

봄처녀 제오시네 새풀옷을 입으셨네

하얀구름 너울쓰고 眞珠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안고 뉘를찾아 오시는고

 

님찾아 가는길에 내집앞을 지나시나

이상도 하오시다 행여내게 오심인가

미안코 어리석은냥 나가물어 볼까나

 

가곡 봄처녀의 내용을 살펴보면 새 풀옷, 하얀 구름, 진주이슬, 꽃다발 등에서 봄처녀는 초현실적인 존재이며, 봄의 이미지를 청초한 처녀로 의인화한 것처럼 보인다. 이 시는 이은상 시인이 20대 초반이던 1920년대 중반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처녀나비는 전통적으로 전래되어 온 나비 이름이 아니라, 나비 연구가로 유명한 석주명(石宙明 1908~1950) 선생이 1930년대 중반에 네발나비과에 속하는 한 나비의 이름을 정할 때 처음 만든 말이다. 훗날 석주명 선생은 1947년에 펴낸 <조선 나비이름의 유래기>라는 짧은 책에서 봄처녀나비라고 이름 짓게 된 배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봄처녀는 봄에 한 달도 안 되게 나왔다가 없어지는 것인데 그 나는 모양이 우리 조선 사람으로는 수줍은 처녀 모습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즉 봄처녀나비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에 이미 봄처녀 시가 존재했으므로, 이은상 시인이 봄처녀나비라는 특정한 나비를 염두하고 시를 지었다고 볼 수 없다. 반대로 석주명 선생이 봄처녀 시를 염두하고 나비 이름을 지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조선 나비이름의 유래기>에 그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순수하게 창작한 이름이 분명하다.

이은상 시인의 개인사에 관한 연구 자료를 살펴보니 봄처녀의 실체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은상 시인이 봄처녀 시를 지을 무렵에 한 여인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 여인이 매일 출근하던 길목에 시인이 살던 집이 있었다. 시의 둘째 연에서 봄처녀는 집 앞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지나는 어떤 존재로 비친다. 봄처녀 시는 봄의 정취를 순수하게 노래했지만, 봄처녀라는 대상은 당시 시인이 사랑하던 여인을 모티브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 여인과 혼담이 오갈 정도로 둘은 가까워졌지만, 두 집안이 종교가 달라 끝내 혼사가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봄처녀나비 (출처: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by 현진오)

 

유래를 알기 어려운 우리 생물 이름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뒤로하고, 우리나라 생물 이름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자. 지난 호에서도 설명했듯이 생물 이름은 크게 학명(學名), 국명(國名), 속명(俗名)이 있다. 학명은 학술적인 목적으로 국제적으로 통일된 생물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만든 라틴어 이름이다. 반면에 속명은 각 문화, 나라, 좁게는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서 고유하게 불어오던 이름이다. 국명은 각 나라마다 자신들의 문자와 언어로 표기하는 공식적인 생물 이름으로 보통 학명에 대응한다. 국명은 널리 사용되는 속명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골라 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민간에서 생물을 구분하는 기준과 자연과학에서 생물을 분류하는 기준이 크게 차이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나비는 약 280종이 알려져 있는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나비 이름(속명)은 호랑나비, 범나비, 흰나비, 노랑나비 등 몇 가지 밖에 안 된다. 그래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생물 이름(국명)은 학자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생물 이름(국명)은 근대 자연과학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 지어졌다. 생물학적인 연구를 통해서 많은 종들이 새롭게 규명되면서 거기에 해당하는 생물 이름을 새로 만들어 붙이게 된다. 학명의 경우는 그 이름이 최초로 발표되는 논문이나 문헌에서 반드시 이름의 어원과 유래를 밝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국명의 경우는 학명과 같은 강제력이 없어서, 국명을 처음 지은 사람이 어원과 유래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국명을 정할 당시에는 그 이름의 뜻을 누구나 알 수 있어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예들 들면 산호랑나비라는 이름은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산()에 사는 호랑나비란 뜻이라는 걸 알 수 있고, 그 나비의 서식지 특성을 반영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름의 경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세대가 바뀌고, 언중들의 언어생활이 조금씩 바뀌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지난 세대들에게 익숙한 낱말이 후대에 와서 잘 사용되지 않거나 그 뜻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딱 맞는 예는 아니지만, 생물 이름의 정확한 유래를 정확히 알지 못 할 때 생길 수 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팔랑나비과에 속하는 나비 중에 직작팔랑나비라는 것이 있다. 이 국명은 석주명 선생이 지은 것으로 날개에 갈지자 무늬가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직작은 영어로 갈지자 무늬를 뜻하는 지그재그(zigzag)’를 음역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곤충학계의 거목인 조복성(趙福成, 1905~1971) 선생이 1959년에 펴낸 <한국동물도감(나비류)>에서 직작줄점팔랑나비직각줄점팔랑나비로 쓰게 된다. 아마 실수로 직작직각으로 잘못 쓴 것 같다. 그런데 후학들이 조복성 선생의 책을 의심 없이 기계적으로 인용하면서 최근까지 여러 문헌과 논문에서 직각줄점팔랑나비라는 잘못된 이름이 사용되었다. ‘직작(zigzag)’직각(直角)’이란 의미로 이해한 것이다. 해당 나비의 특성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직각이라는 말이 왜 이름에 들어갔는지 의심만 했어도 피할 수 있는 실수였다. 다행히 최근에 나온 <한반도의 나비>라는 책을 통해서 원로 곤충학자인 경희대 신유항 전 교수가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다시 직작으로 바로잡아 부르고 있다.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우리말 생물 이름은 대부분이 그 유래와 기원이 명확하지 않다. 반면에 근대적인 자연과학이 성립한 이후로 생물학에서 사용하는 국명은 명명자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수많은 우리 생물 이름들이 누가 어떻게 지었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 한다. 우리의 말과 글로 자유롭게 학문할 수 없던 시대라서 대부분의 문헌이 일본어로 작성되었고, 거기에 조선말로 된 이름을 참조 형태로 표기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해방을 맞으면서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말로 학문을 시작하면서, 조선생물학회(구 조선박물학회)를 중심으로 우리말 생물 이름을 정리하는 일이 활발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후의 문헌에서도 생물 이름의 유래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단순히 학명과 일본 이름 등과 대조하여 간략한 목록(list) 형태로 정리된다.

생물 이름(국명)은 생물학계에만 통용되는 전문용어가 아니라 일반 언중들의 언어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학교육이 대중화된 오늘날은 더욱 그러하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라고 하더라고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언어학적이고 사회적인 행위다. 자신들이 생산한 말이 언어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일제강점기 때부터 활동한 선학자들이 알았더라면 생물 이름을 짓는 데도 좀 더 신중하고 그 근거를 남기는 데 더욱 신경을 썼을지도 모른다. 우리 생물 이름과 우리말에 관심이 많은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점이 늘 안타깝다.

 

석주명과 나비 이름 유래

그런 가운데, 석주명 선생이 남긴 <조선 나비이름의 유래기>는 정말 보물 같은 책이다. 선생 덕분에 우리나라 나비 이름만큼은 대부분 그 유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석주명 선생이 생물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언어학자로서 또 우리 전통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국학자로서 탁월한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석주명 선생은 1908년 평양에서 태어나, 1926년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일본 가고시마(鹿兒島)고등농림학교에 농학과에 진학한다. 그곳에서 오카지마 긴지(岡島銀次, 1875~1955) 교수를 만나 한국산 나비 연구에 처음 관심 갖기 시작한다. 1929년 졸업과 함께 박물교사(생물교사)로 함흥 영생고보에서 일했고, 1931년에 모교인 송도고보로 옮긴다. 이때부터 1942년까지 11년 동안 나비 연구를 왕성하게 펼친다.

이후 경성제국대학 생약연구소에 촉탁으로 들어가면서(1942) 시험소가 있던 제주도에서 2년간 머무르게 된다. 이때 석주명은 나비 연구뿐만 아니라 제주 지역에 관해서도 연구했다. 특히 제주 방언에 관한 연구는 국어학계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해방 후에는 수원농사시험장 병리곤충학 부장, 국립과학관 동물학 연구부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중인 1950106일 서울 충무로4가 근처를 지나다가 술 취한 우익청년과 시비가 붙어 총을 맞고 42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짧은 생애 동안 석주명 선생은 250여 종의 한국산 나비를 분류하고, 그 분포를 밝히고, 그 중 대부분의 것에 우리말 이름을 붙였다. 또 당시 학자들이 개체변이를 고려하지 않아 저지른 분류학상의 잘못을 해결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저명한 외국학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학자들이 펴낸 도감이나 책을 보면서 그들의 잘못을 발견한다. 그들은 개체별로 형질 차이를 보이는 개체변이를 고려하지 않고 몇 개의 표본만 보고 형태가 조금만 달라도 신종으로 기재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석주명 선생은 이를 바로 잡아 중복해서 잘못 붙인 844개의 학명을 폐기시켰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석주명 선생이 비명에 가지 않고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어땠을까. 학문적인 성실함은 차치하더라도, 생물학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로운 지적 탐구를 펼쳤던 성향은 오늘날처럼 학제 간에 통합적인 연구가 필요한 시대에 학자로서 모범이 되었을 것이다. 또 언어학적인 관심이 많아서, 분명히 우리 생물 이름의 유래와 어원을 밝히는 데도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 같이 생물 이름에 관한 하찮은 글을 쓰는 사람이 많은 수고를 덜지 않았을까.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조선 나비이름의 유래기>라는 작은 책이 그래서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나비 이름의 유래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280종의 나비는 크게 팔랑나비과, 호랑나비과, 흰나비과, 부전나비과, 네발나비과 등 5개과로 나뉘며, 각 과는 여러 개의 아과(亞科, subfamily)로 다시 나뉜다. 지금부터는 <조선 나비이름의 유래기>의 내용을 중심으로 대표적인 우리 나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자.

팔랑나비과에 속한 나비는 이름처럼 팔랑거리며 나는 것이 특징이다. 석주명 선생은 나는 모양이나 행동이 몹시 까부니 팔랑나비로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37종이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모습이 유난히 떠들썩한 오클로데스속(Ochlodes)에 속한 나비는 떠들썩팔랑나비라고 이름 붙였다. 그 중에서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는 앞날개에 반투명 막이 있어서, ‘수풀떠들썩팔랑나비는 학명(O. sylvanus)에 숲(sylvanus, silvanus 라틴어로 숲의 신)이라는 뜻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참고로 수풀떠들썩팔랑나비라는 이름은 현재 다른 종(O. venata)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되며, 본래 적용되던 종(O. sylvanus)2005년부터 산수풀떠들썩팔랑나비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호랑나비과의 나비는 날개에 범 무늬가 특징인 호랑나비(범나비)’ 외에도, ‘모시나비제비나비종류를 포함한다. 나비는 날개가 인편(鱗片)이라 불리는 미세한 비늘로 덮여 있다. 인편을 모두 털어내면 잠자리처럼 투명한 날개만 남는다. 그런데 모시나비는 태생적으로 다른 나비에 비해 인편이 적어서 날개가 반투명이다. 석주명 선생은 모시나비의 날개가 옷감의 일종인 모시를 연상시켜서 붙인 이름이라고 밝혔다. 모시나비 중에서 날개에 붉은 점이 인상적인 붉은점모시나비는 북방계 나비로 남한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아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II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제비나비는 날개에 긴 돌기가 있다. 돌기가 마치 제비의 꼬리를 연상시켜서 붙은 이름이다.

흰나비과는 우리나라에 22종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기생나비’, ‘노랑나비’, ‘상제나비’, 흔히 그냥 흰나비로 많이 불리는 배추흰나비등이 있다. 기생나비는 몸 전체가 희고, 크기가 작은 예쁜 나비다. 석주명 선생은 형태나 생태가 기생을 연상시켜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노랑나비는 옛 문헌에 황접(黃蝶)’으로 불리던 종류로 날개가 노란 것이 특징이다. 노랑나비라는 이름은 석주명 선생이 지은 것이 아니라 고래로 널리 쓰인 이름이라고 한다.

상제나비는 장례에서 죽은 사람의 배우자나 직계비속을 뜻하는 상제(喪制)’가 이름에 들어간다. “그저 흰나비라고 해서는 만족하지 못할 만큼 흰 나비라서 마치 흰 상복을 입은 사람을 연상시켜서 붙인 이름이다. 북방계 나비로, 남한에서는 현재 강원도의 일부 지역에서만 아주 드물게 관찰되기 때문에,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I급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흰나비 종류 중에서 가장 익숙하고 또 흔한 것이 배추흰나비다.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무, 냉이, 유채, 배추 같은 십자화과 식물을 먹이로 삼는데, 특히 농작물 중에서 배추에 많은 해를 주기 때문에 배추흰나비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배추흰나비가 예전만큼 많이 관찰되지 않는다. 오히려 비슷한 종인 대만흰나비가 많이 보인다. 대만흰나비라는 이름도 석주명 선생이 지었는데, 일본 이름을 참조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보다 대만에서 많이 관찰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앞다리가 작게 퇴화한 네발나비

네발나비과는 우리나라에 126종이 알려져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전체 나비 중에서 가장 많은 종을 거느린 무리다. 앞다리가 작게 퇴화해서 마치 다리가 네 개인 것처럼 보여서 붙은 이름이다. 네발나비과에는 대표적으로 뿔나비를 비롯해, ‘-먹나비’, ‘-그늘나비’, ‘-처녀나비’, ‘-지옥나비’, ‘-뱀눈나비’, ‘-굴뚝나비’, ‘-물결나비’, ‘-거꾸로여덟팔나비’, ‘-신선나비’, ‘-표범나비’, ‘-어리표범나비’ ‘-오색나비’, ‘-줄나비등의 이름이 붙는 것이 있다.

뿔나비는 주둥이가 거대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만든것이고, 먹나비는 색이 검어서, 그늘나비는 그늘에 있는 습성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처녀나비는 앞서 소개한 봄처녀나비 외에도 도시처녀나비시골처녀나비’, ‘북방처녀나비등이 우리나라에 서식한다. 석주명 선생은 도시처녀나비는 날개 안쪽에 있는 흰 띠가 도시 처녀의 흰 리본을 연상시켜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시골처녀나비는 날개의 노랑색이 시골 처녀의 노랑저고리를 연상시킬 뿐만 아니라, 주로 시골에서만 드문드문 관찰되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북방처녀나비는 앞서 소개한 신유항 교수가 1989년에 이름 붙인 것으로, 석주명 선생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국내 서식이 확인되지 않은 종이다. 러시아 극동 남부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북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어서 북방이라는 말이 붙었다.

뱀눈나비는 날개에 뱀눈 모양의 얼룩무늬가 있어서, 굴뚝나비는 색채가 검은색에 가까워서 붙은 이름이다. ‘산굴뚝나비는 북방계 나비로 우리나라에서는 북부 고산지대에서 볼 수 있다. 평지에 많은 굴뚝나비와 달리 해발이 높은 산지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붙었다. 남한에서는 제주도 한라산 해발 1300미터 이상에서만 분포해서 현재 천연기념물 제458호 및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I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물결나비는 날개에 아랫면에 파도 무늬가 있는데, 석주명 선생은 이 나비의 일본 이름(裏波蛇眼)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밝힌다. 거꾸로여덟팔나비도 마찬가지로 일본 이름을 참조해 지었는데, 날개에 거꾸로 된 여덟 팔()자 무늬가 있다. 표범나비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날개에 표범 무늬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어리표범나비는 표범나비와 비슷하지만 진짜 표범나비는 아니라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줄나비는 검은 바탕의 날개에 흰 줄이 있어서, 줄나비와 비슷한 세줄나비는 흰 줄이 세 개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신선나비는 학명(Nymphalis)에서 유래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님프(nymphe)는 숲, , 샘물, 바다, 산 등에 깃든 정령 또는 여신을 뜻한다. 님프를 신선(神仙)으로 옮긴 것이다. 오색나비는 수컷의 날개 표면이 햇빛에 따라 남빛을 띠는 종류로 이 무리를 대표하는 종의 학명(Apatura iris, 우리나라에서는 번개오색나비로 불린다.)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이리스(iri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지개의 여신이다. 지옥나비도 이 나비 종류의 속명(Erebia)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어로 에레보스(erebos)는 짙은 암흑을 뜻하며, 신화에서는 암흑 또는 지옥의 신 이름이기도 한다. 지옥나비는 주로 고산지대에 분포한다. 석주명 선생은 이름의 유래에 덧붙여 지옥가는 것처럼 고생을 하면서 고산(高山)에 올라 초본대(草本帶)에 도달하여 이 나비를 보면 지옥나비란 이름이 실감난다.”고 설명한다.

 

도대체 부전나비는 무슨 뜻일까?

부전나비과는 우리나라에 79종이 알려져 있다. 부전나비는 대부분 크기가 아주 작고, 날개 아랫면은 화려하지만 윗면은 대부분 우중충한 잿빛이라서 중국에서는 소회접(小灰蝶)’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작은 민물조개인 재첩을 닮았다고 해서 시미지죠우(シジミチョウ, 蜆蝶)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부전나비에 들어가는 부전이 무슨 뜻인지에 관해 나비 연구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다. 논란의 발단은 부전나비의 유래에 관한 석주명 선생의 설명에서 시작된다.

 

“Lycaenidae를 본래부터 부전나비라고 해 온 것은 그 형태를 잘 표현한 것으로 선배의 명작이다. 부전이란 말은 사진틀 같은 것을 걸 때에 아래에 끼우는 작은 방석의 역할을 하는 삼각형의 색채 있는 장식물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는 부전을 예전에, 여자 아이들이 차던 노리개의 하나. 색 헝겊을 둥근 모양이나 병 모양으로 만들어서 두 쪽을 맞대고 수를 놓기도 하고 다른 빛의 헝겊으로 알록달록하게 대기도 하여 끈을 매어 차고 다녔다.”라고 되어있다. 또 민속자료를 찾아보면, 부전을 바늘을 보관하는 바늘집 또는 바늘쌈지라고 설명한다. 즉 부전은 바늘을 보관할 수 있는 노리개로, 그 속에 뾰족한 바늘을 꽂거나 넣어도 안전하도록 속에 단단한 조개껍질 따위를 받쳐 넣은 형태의 물건으로 여겨진다. 국어사전에 부전조개조개부전이라는 말이 부전과 동의어로 올라가 있는 것이 이와 같은 생각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석주명 선생이 말하는 부전과 사전적인 의미의 부전은 뜻이 잘 통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석주명 선생은 부전나비라는 이름이 선배의 작품이라고 했으므로, 그 선배라는 사람이 실제로 부전을 석주명 선생이 말한 의미로 사용했는지 불확실하다. 당시 상황을 비춰볼 때 우리 나비 이름을 정할 때 일본 이름을 참조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어로 재첩나비라는 뜻의 부전나비는 날개를 접고 앉은 모습을 모면 영락없이 작은 조개 모양이다. 따라서 부전에 대한 석주명 선생의 설명과 관련 없이, 부전나비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은 조개모양의 바늘집이며 노리개인 부전을 염두하고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진실은 오직 그 선배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악기 장구에서 줄을 조이거나 풀어 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부분을 우리말로 부전이라고 하는 점이 흥미롭다. 가죽 따위로 만들며 삼각형인 이 부전은 석주명 선생이 말하는 부전과 형태적으로 유사할 뿐만 아니라, 앞뒤를 맞대어 만들었다는 점 등에서 형태적으로 바늘집을 뜻하는 부전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장구의 부전과 바늘집인 부전이 같은 어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 <말과글> 2013년 봄호(제134호) pp. 78~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