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울음소리가 그대로 이름이 되다
꿩, 울음소리가 그대로 이름이 되다
글_이주희
꿩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텃새 중에 하나다. 중국 전역과 중앙아시아, 일본에도 널리 분포한다. 꿩은 땅에서 주로 생활하는 대표적인 지상형 조류로, 야산이나 들, 농경지 주변 등에 살면서 식물의 씨나 열매, 벌레 따위를 먹고 산다. 서식지가 사람들의 생활공간과 가깝고 개체수도 풍부해서 예부터 사냥감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멧돼지와 토끼 등과 함께 꿩의 뼈가 많이 출토된다. 또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예법에 관한 책인 『주례(周禮)』와 『예기(禮記)』에도 꿩고기에 관한 내용이 전하고,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여러 문헌에도 꿩 사냥과 꿩고기 식용에 관한 기록이 많다.
꿩을 이용한 전통음식은 셀 수 없이 많다. 가공하지 않은 날 꿩고기를 ‘생치(生雉)’라고 하는데, 탕‧구이‧만두‧지짐이‧조림 등 고기로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요리에 꿩고기를 사용했다. 심지어 동치미에 꿩을 삶아 우려낸 국물과 꿩고기를 잘게 찢어 넣은 김치도 있고, 겨울에 날 꿩고기를 얼려서 칼로 얇게 저며 초간장에 찍어 먹는 동치(冬雉)라는 음식도 있었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꿩은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되어 행운과 복을 상징한다. 그래서 각종 의례에 사용되는 음식에 꿩고기를 많이 쓴다. 새해 첫날을 기념하는 설날에 먹는 떡국도 원래는 꿩으로 국물을 내고 꿩고기를 잘게 찢어 고명으로 얻어서 먹던 음식이다. 그러나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상대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닭고기가 차츰 꿩고기를 대신하게 되었고, 소고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오늘날은 꿩고기를 즐겨먹지 않게 되었다. 이와 함께 다양하고 독특한 고유의 꿩 요리법이 지금은 거의 단절되어 아쉽다.
꿩의 깃털은 길고 아름다워 공예 재료로도 많이 사용했다. 특히 머리나 모자, 깃대 등을 장식하는 데 많이 사용했고, 그 외에 화살깃과 부채를 만드는 데도 사용했다. 고대 중국에서는 황제나 황후가 입는 옷에 꿩 문양을 수놓았고, 조선시대 왕과 왕후의 옷에도 꿩 문양이 들어있다. 대한제국 때 사용된 의전용 깃발인 백치기(白雉旗)에는 흰 꿩이 그려져 있다.
한편, 『신증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1766년)나 『규합총서(閨閤叢書)』 (1809년) 같은 옛 문헌에 나오는 꿩고기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8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만 꿩을 잡을 것을 권한다. 3월부터 7월 사이에 포획한 꿩은 맛이 안 좋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독이 있어 몸에 해롭다고 적고 있다. 꿩고기 맛은 어떨지 모르지만, 독이 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그런데 꿩고기를 먹지 말라는 시기가 꿩의 번식기와 묘하게 일치한다. 어쩌면 우리 조상들은 실제로 꿩고기가 맛이 없거나 해로워서 잡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남획을 막고 지속적으로 꿩을 이용하기 위해 일종의 사냥 금지 기간을 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울음소리에서 유래한 꿩
꿩을 나타내는 한자는 ‘치(雉)’다. 새 ‘추(隹)’와 화살 ‘시(矢)’ 자가 합친 글자다. 활을 쏘아 잡는 새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만큼 꿩이 사냥용 조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해석도 있다. 꿩은 몸이 통통한데 비해 비행능력은 그다지 신통치 않아 비행거리가 짧고 비행술도 서툴다. 꿩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거의 일직선으로 날아간다. 중국 명나라 때 편찬된 의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1590년)에는 꿩이 날아가는 모습이 마치 화살처럼 곧게 날아가는 데서 ‘치(雉)’ 자가 유래했다고 전한다.
우리말 ‘꿩’에 대해서는 정확한 유래가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꿩의 울음소리를 흉내 낸 말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꿩의 울음소리를 실제 들어본 사람이면 금방 공감할 것이다. 야산을 돌아다니다보면 수풀에 숨어 있던 꿩이 인기척에 놀라 ‘꿔꿩’하고 울며 날아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꿩보다 오히려 사람이 더 놀랄 정도로 그 소리가 우렁차다. ‘꿩’이라는 말은 한글창제 직후에 편찬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1447년)에 이미 오늘날과 거의 같은 형태인 ‘’[각주 참조]으로 쓰고 있다. 꿩을 이용한 역사만큼이나 ‘꿩’이라는 말도 오래 전부터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꿩은 수컷을 ‘장끼’ 또는 ‘수기’라고 부르고, 암컷은 ‘까투리’, 어린 새끼는 ‘꺼병이’라고 한다. 수컷은 얼굴이 붉고, 목에 금속광택이 나는 진한 녹색 깃으로 덮여 있고, 꼬리가 길어서 화려하다. 반면에 암컷은 몸 전체가 황갈색에 검은 얼룩무늬가 덮여 있어 수컷과 뚜렷이 대비된다. 즉 암수가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생김새의 차이가 크다.
장끼는 ‘장+끼’의 구조로 볼 수 있다. ‘장’은 아마도 한자어에서 유래한 듯하다. 장로(長老), 장군(將軍), 장사(壯士), 장부(丈夫) 등과 같이 ‘장’으로 읽는 한자가 들어가는 한자어 중에는 남성과 관련된 낱말이 많다. 한자문화가 우리말에 미친 영향이 오래다보니 우리는 ‘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남성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따라서 ‘장끼’의 ‘장’은 정확히 어떤 한자를 지칭하기보다는, ‘장’이라는 소리가 갖는 이미지에 따라 수컷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문제는 ‘끼’이다. 우리말 새 이름 중에는 해오라기, 메추라기, 갈매기, 비둘기 등과 같이 ‘-기’가 들어가는 것이 많다. 지난 호에도 얘기했듯이 ‘기’는 새를 뜻하는 우리 고유어일 가능성이 크다. 장끼의 ‘끼’가 ‘기’가 변한 것이라면, 장끼는 ‘수컷 새’라는 뜻이 된다. 반면에 ‘끼’를 ‘꿩’과 마찬가지로 꿩의 울음소리를 본뜬 의성어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면 장끼는 ‘수컷 꿩’이라는 뜻이 된다. 마찬가지로 ‘수기’라는 말은 ‘수+기’의 구조이며, ‘수컷 새’ 또는 ‘수컷 꿩’이라는 뜻이다.
까투리는 옛 문헌에 ‘가톨’ 또는 ‘가토리’로 표기한 것이 보이는데, 정확한 유래는 모른다. 국어학자 서정범은 까투리(가토리)가 ‘가+ㅎ+도리’의 구조라고 본다. 사이히읗(ㅎ)이 들어간 형태다. 우선 ‘도리’는 새라는 뜻으로 보고, 우리말 ‘닭’과 일본어로 새를 뜻하는 ‘도리(とり)’와 어원이 같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는 여자나 아내를 뜻하는 옛말인 ‘갓(가시)’에서 유래했단다. 그렇다면 까투리는 ‘암컷 새’라는 뜻이 된다. 참고로 ‘갓(가시)’은 지금도 여자나 계집아이를 뜻하는 말로 많이 사용하는 남부 방언인 ‘가시내’, ‘가시나’와 이북 방언인 ‘간나’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꺼병이는 꺼(꿩)+병이(병아리)의 구조이며, ‘꿩의 병아리’라는 뜻이다. 옷차림새나 생김새가 엉성하거나, 성품이 야무지지 못하고 어수룩한 사람을 가리킬 때 ‘꺼벙하다’고 표현한다. 꺼벙하다는 말은 ‘꺼병이 같다’는 뜻으로, 꿩의 어린 새끼가 생김새는 볼품이 없고 행동도 어수룩한 데서 비롯되었다.
마지막으로 일본어와의 관계도 살펴보자. 1947년에 일본조류학회가 일본의 국조(國鳥)로 지정할 정도로 꿩은 일본인들에게도 매우 친숙하다. 일본어로 꿩을 ‘기지(きじ)’라고 한다. ‘기지’는 고어인 ‘기기시(きぎし)’의 축약형으로,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년)부터 사용되던 말이다. ‘기기시’의 다른 형태로 ‘기기스(きぎす)’가 있다. 예전에 이미 설명했듯이 일본어 새 이름 중에는 끝에 ‘스(す)’와 ‘시(し)’가 들어간 것이 많은데, 이는 우리말 ‘새’와 뿌리가 같다. 남는 것은 ‘기기-’인데, 우리말 ‘꿩’과 장끼의 ‘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꿩의 울음소리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 <자연과생태> 2013년 4월 (통권 69호)에 실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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