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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만난 세계사 / 손주현 / 라임, 2019

식물인간 2020. 4. 19. 11:54

동물원에서 만난 세계사 / 손주현 / 라임, 2019

 

우리나라에서 동물복지나 동물권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시점은 아마 덕선이가 마다가스카르 선수 대표단의 피켓 걸로 선발된 무렵일 것이다.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를 준비하던 정부는 개고기를 먹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부담스러워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기간에 개고기 판매를 금지하면서 사회적으로 찬반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의 개고기 식용 논란은 주로 문화상대주의라는 측면에서 논의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동물복지나 동물권에 대한 담론도 어렴풋이 등장하게 된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개나 고양이를 단순한 동물이 아닌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길고양이를 보호하는 이른바 캣맘이 등장하고, 동물보호단체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동물들이 고통 받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반대하며 아예 육식을 거부하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반면에 여전히 복날에 개고기를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지금은 동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시기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한 입장을 선택해야 하고 그러한 선택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따라야 한다.

 

제목에서 읽히듯 이 책은 선사시대, 초기 문명시대,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서두에서 동물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담담히 전할 뿐이라고 밝혔지만, 비교적 가볍게 읽히던 이야기가 중세를 넘어 근대에 이르면 결코 담담해지기 어려워진다. 동물은 숭배 또는 동등한 대상에서 점차 인간의 권력과 욕망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그 정점이 바로 제국주의 시대다.

 

다행히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동물을 고통과 감정이 없는 기계로 보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 인식한다. 이러한 시선의 변화는 관계의 변화로 이어진다. 저자가 역사를 상대적으로 차별받는 존재들이 온전한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규정했듯이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차별문제다. 인간이 아닌 존재(동물)를 윤리적으로 충분히 고려하는 사회라면 성별이 다르거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동물과 연관된 역사적 사건들이 조각조각 나열된 느낌도 없잖아 들지만,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많이 주목받지 못했던 주제로 방대한 역사를 잘 꿰어 정리한 점은 높이 살만하다. 거기에 풍부한 자료 사진과 삽화가 흥미를 돋운다. 동물복지와 동물권에 관한 사회적인 논의가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시기에 청소년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이주희 컵앤캡(Cup&Cap) 편집장, 야생동물은 왜 사라졌을까저자

 

* 아침독서신문(중고등) 138호 (2019. 4)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