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관련한 이름들, 미나리 미더덕
물과 관련한 이름들
- 미나리, 미더덕
글_이주희
미나리는 산형화목 산형과 여러해살이풀로 물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잘 자란다. 연한 줄기와 잎을 주로 먹는데, 향이 독특해서 탕에 넣거나 데쳐서 나물로 먹는다.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수요가 늘어나 논이나 밭에 물을 대고 재배하는 곳이 많아졌다. 이렇게 미나리를 키우는 논을 미나리꽝이라고 한다. 고려 때 미나리 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미나리를 먹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 부터다. 미나리는 한 여름에 산형꽃차례의 흰 꽃이 피는데, 미나리를 주로 먹기만 하다 보니 정작 꽃을 아는 사람을 많지 않다. 한방에서 미나리는 열을 내리고, 이뇨작용을 해서 붓기를 빼고, 강장과 해독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더덕은 모양은 이상해도 측성해초목 미더덕과에 속하는 엄연한 동물이다. 멍게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크기가 5~10센티미터 정도로 멍게보다 작다. 우리나라의 모든 연안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유생시절에는 바닷물에 떠다니다가 조금 자라면 물속 바위 같은데 부착해서 살아간다. 씹어서 톡하고 터질 때 입 안 가득 배어나는 향이 독특하고 씹는 느낌이 좋아 찌개나 탕 요리에 많이 사용한다.
우리말에 조금이라고 관심 있다면, 미나리와 미더덕이 들어간 얼큰한 해물매운탕에 먹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미나리와 미더덕이라는 말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미’를 빼면 나리와 더덕이라는 낱말이 남는다. 나리와 더덕은 익숙한 말이다. 나리는 백합과에 속하는 꽃 이름이고, 더덕은 뿌리를 캐서 먹은 덩굴식물이다. 그렇다면 ‘미’라는 말은 분명 두 사물의 공통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수식어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미나리나 미더덕 모두 물에 산다. 그렇다면 ‘미’는 물과 관련 있지 않을까?
물을 뜻하던 옛 우리말
물이라는 말은 15세기 중세 국어로는 ‘믈’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이라는 우수한 문자가 없던 14세기 이전에 물을 뜻하는 말이 어떻게 소리 났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한자의 음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이를 통해 물이라는 낱말의 옛 모습을 추적할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37권에는 지명과 관련한 기록이 많이 등장하는데, 거기서 물과 관련한 우리 옛말의 흔적으로 엿볼 수 있다. 그 중에 ‘買忽一云水城’라는 기록이 있다. 그 뜻은 ‘매홀(買忽)을 수성(水城)이라고도 한다’는 뜻이다. 수성은 현재 경기도 수원(水原)이다. 수성은 말 그대로 물 고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매홀은 한자의 뜻으로 새기면 도대체 무슨 뜻인지 풀이할 수가 없다. 매홀은 한자의 음만 빌려 온 것이기 때문이다. 즉 매(買)는 수(水)에 대응하고 홀(忽)은 성(城)에 대응하는 우리말이다.
또 다른 예로 인천(仁川)의 옛 이름인 미추홀의 경우다. 이에 관한 기록을 보면 ‘買召忽縣一云彌鄒忽’ 즉 ‘매소홀을 미추홀이라고도 부른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전한다. 이 경우는 둘 다 한자의 소리만 빌려온 것으로 매(買)와 미(彌)가 서로 대응한다. 앞서 매홀의 매(買)가 물을 뜻하므로 미(彌)도 물을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매홀, 매소홀, 미추홀은 모두 고구려식 지명이다. 따라서 고구려말로 ‘매’와 ‘미’가 물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신라식 지명에서 이에 해당하는 한자어는 물(勿)이다. 따라서 삼국시대에 물을 뜻하는 말이 매, 미, 물 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한자의 발음이 오늘날과 같진 않았겠지만, 일찍부터 한자어 읽는 법이 통일되어 전해져 왔으므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형태적으로만 봐도 매, 미, 물 등이 모두 같은 계열의 낱말이라는 점은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우리말과 관련 있는 주변 언어를 살펴봐도 비슷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일본어로 물을 ‘미즈’라고 하고 만주어로 ‘무케’, 퉁구스어로 ‘무’이며, 강을 뜻하는 몽골어 ‘무렌’과 위구르어 ‘무란’ 등도 우리말 물과 같은 뿌리를 가진 말이다.
물에서 난 미나리와 미더덕
미나리는 물을 뜻하는 옛말 ‘미’와 ‘나리’가 합친 말이다. 나리는 풀이나 나물의 뜻하는 고유어로 미나리는 물에 나는 풀 또는 나물이라는 뜻이 된다. 한편 나리는 참나리, 말나리, 하늘나리 등 백합과 식물을 나타내는 순우리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미나리는 물에 나는 나리라는 뜻도 될 수 있다. 하지만 미나리 줄기나 꽃을 보면 나리와 전혀 비슷하지 않아 마지막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미나리와 마찬가지로 미더덕도 물을 뜻하는 ‘미’와 ‘더덕’이 합친 말이다. 말 그대로 물에서 나는 더덕인 셈이다. 더덕은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 덩굴식물로 인삼과 비슷하게 생긴 뿌리를 캐서 먹는다. 그러고 보니 미더덕은 자은 더덕 뿌리와 닮았다. 씹으면 아삭하니 향긋한 냄새가 나는 점도 미더덕과 더덕은 비슷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더덕의 어원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미역도 물과 관련 있을까?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일부 문헌을 살펴보면 미역의 어원과 관련 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내용이 많다. <바다생물 이름 풀이사전>(박수현 지음, 지성사, 2008)이라는 책에 미역의 어원에 관해 설명한 부분이다.
“『삼국사기』에 고구려 시대에는 물을 매(買)로 썼는데 미역의 생김새가 물에서 나는 여뀌와 비슷하다 하여 매역(물여뀌)이라 썼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 매역이 어휘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미역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삼국사기>를 아무리 살펴도 미역의 어원에 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삼국유사>에도 이와 관련한 언급이 없다. 앞서 설명했듯 <삼국사기>에서는 매(買)가 물을 뜻한다는 점만 알 수 있다. 미역의 ‘미’가 물을 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삼국사기>가 미역의 어원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은 없다. 어디서 잘못되어 이런 정보가 확대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바로 잡아야겠다.
참고로 한글로 미역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은 16세기 초에 지어진 <속삼강행실도>라는 책에서다. 거기에 미역을 ‘머육’이라는 표기하고 있으며 이후 머욕>메욱>미역으로 변했다. 국어학자 서정범은 ‘머육’의 조상말이 ‘머룩’이라고 보고 말뿌리는 ‘멀’이라도 주장한다. 멀은 오늘날 다시마 같은 해조류를 뜻하는 말(藻)의 조상말이다. 다시마의 ‘마’도 말(藻)에서 왔다. 그렇다면 미역은 그자체로 말(藻)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미역의 어원에 관해서는 여전히 풀어야 할 부분이 많다.
참고
1. 김민수, <우리말 語源辭典>, 태학사 (1997)
2. 서정범, <국어어원사전>, 보고사 (2000)
3. 김부식, <삼국사기>
4. 박수현, <바다 생물 이름 풀이사전>, 지성사 (2008)
* 자연과생태 2009년 7월호(Vol.24) '내 이름은 왜?' 기사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