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이름 연구/생물 이름 이야기

가을길을 수놓는 아름다움, 코스모스

식물인간 2014. 4. 4. 19:27

가을길을 수놓는 아름다움

코스모스

 

 

글_이주희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길을 걸어갑니다…” 흘러간 대중가요 노랫말이 절로 입안에 맴도는 계절이다. 코스모스하면 가을에 피는 꽃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사실 초여름부터도 어렵잖게 꽃핀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봄에 뿌린 씨앗이 싹트려면 제법 높은 온도가 필요하고, 꽃을 피울 만큼 자라는 데도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해 가을 무렵에 꽃이 핀 모습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생긴 것과 달리 생명력이 강한 코스모스는 사람 눈에 잘 띄는 길가나 들판에 아무렇게나 잘 자라면서 화려하고 큼직한 꽃을 피운다. 상대적으로 가을철에 꽃이 피는 식물이 많지 않으니 코스모스가 가을을 대표하는 식물이 된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양한 뜻을 가진 코스모스

우리에게 코스모스라는 외래어는 식물이름으로 가장 친숙하지만, 이 말의 본래 고향인 서양에서는 훨씬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코스모스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코스모스(κόσμος)에서 유래했으며 질서, 조화, 장식, 조정자, 조화로운 우주(세계) 등 여러 뜻을 담고 있다. 현재까지도 그 뜻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천문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미국의 저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 Sagan, 1934~1996)은 <코스모스(Cosmos)> 제목의 다큐멘터리와 같은 이름의 책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주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서 ‘코스모스’는 바로 우주를 뜻한다.

그리스-로마문화와 기독교문화에 바탕을 둔 서구문화는 신이 창조한 우주(세계)는 질서 정연하고 조화롭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서양철학에서는 혼돈을 뜻하는 카오스(χάος)의 반대말로 코스모스라는 말을 썼으며, 자연스레 코스모스는 선하고 아름답다는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 한편 코스모스의 본래 뜻에 장식이나 치장의 의미도 있어 영어에서 화장을 뜻하는 코스메틱(cosmetic)이라는 말도 코스모스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이처럼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코스모스라는 말이 식물이름으로 사용되게 된 것은 불과 200여 년 전부터다.

 

 

스페인 식물학자가 이름 붙여

코스모스는 국화과(Compositae)의 한 속(genus)을 가리키는 이름이면서 또 코스모스(Cosmos bipinnatus)라는 한 종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코스모스속 식물 중에 우리나라에는 소개된 것은 코스모스와 노랑코스모스(Cosmos sulphureus)다. 두 종 모두 한해살이 식물로 멕시코가 원산지다. 18세기 후반 신대륙 개척자들을 통해 채집되어 스페인을 거쳐 유럽에 전파되었고, 이후 세계로 퍼져 관상용으로 널리 심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코스모스가 도입된 것은 1912년에서 1926년 사이로 추정되며, 관상용으로 전국에서 재배되다가 일부가 야생화 한 것으로 여겨진다. 노랑코스모스는 코스모스보다 늦은 1930년에서 1945년 사이에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코스모스와 마찬가지로 관상용으로 심다가 일부가 야생화 했다.

코스모스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사람은 스페인 식물학자 안토니오 호세 카바니예스(Antonio Jose Cavanilles, 1745~1804)다. 그는 탐험가들이 수집해 온 세계의 수많은 식물표본들을 정리하고 연구해서 이름을 붙였는데, 코스모스도 바로 그 중 하나다. 카바니예스는 새로운 식물을 소개하는 몇 권의 책을 냈는데, 그 중에 아메리카 대륙과 필리핀 등지에서 채집되어 그에게 보내진 식물들을 정리해 새로운 이름과 설명을 붙이고 그림을 실은 <Icones et Descriptiones Plantarum>(1791)라는 책이 있다. 책 제목을 우리말로 하면 ‘식물에 관한 그림과 해설’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한 마디로 식물도감이라는 뜻이다.

코스모스가 최초로 소개된 것은 바로 이 책이다. 카바니예스는 멕시코에서 건너 온 두 종류의 친척뻘 식물에 각각 린네식 명명법에 따라 ‘코스모스 비핀나투스(C. bipinnatus)’와 ‘코스모스 술푸레우스(C. sulphureus)’라는 학명을 붙이고 이들을 묶어 코스모스라는 새로운 속을 이 책에 최초로 기재한다. 코스모스라는 속명은 그리스어 뜻을 그대로 차용했다. 하지만 코스모스의 여러 가지 뜻 중에서 질서, 조화, 우주 같은 거창한 뜻이 아니라 코스모스의 크고 화려한 꽃의 특징을 나타내어 ‘장식’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러고 보면 코스모스 꽃을 보면 어린 시절 모처럼 정장차림으로 외출을 나가시는 어머니 가슴에 달려 있던 커다란 꽃 모양 브로치가 생각난다.

한편 코스모스의 학명에서 종소명 비핀나투스는 ‘이중으로(bi-) 깃이 났다(pinnatus)’는 뜻이다. 즉 코스모스의 잎이 2회깃꼴겹잎(2회우상복엽)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노랑코스모스의 학명에서 종소명 술푸레우스(sulphureus)는 라틴어로 유황(硫黃)을 뜻하는 형용사며, 영어에서 유황을 뜻하는 ‘설퍼(sulfur, sulphur)’라는 말이 바로 라틴어로 유황을 뜻하는 명사다. 노랑코스모스의 꽃잎이 마치 유황색깔처럼 노랗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 노랑코스모스의 영어 이름도 옐로우 코스모스(yellow cosmos)이며, 노랑코스모스라는 우리 이름은 바로 이 영어이름에서 유래했다.

 

 

북한에서는 ‘길국화’라고 불러

이후 카바니예스가 붙인 코스모스라는 학명이 그대로 일반명으로 쓰이면서 대부분의 유럽언어에서 ‘코스모스(cosmos 또는 kosmos)’라는 이름이 코스모스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사용된다. 또 유럽인들을 통해 코스모스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그 이름이 그대로 전해졌다. 일본어로 코스모스를 가을벚꽃이라는 뜻으로 ‘아키사쿠라(秋櫻)’라고도 하지만 ‘코스모스(コスモス)’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한자어로는 추영(秋英), 파사국(波斯菊), 대파사국(大波斯菊)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파사’는 ‘페르시아’를 뜻하는 한자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일부 사람들은 코스모스를 ‘살살이꽃’이라고 부른다.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 모습이 연상되는 예쁜 우리말 이름이지만 이 이름은 거의 쓰이지 않고 코스모스만 표준어로 삼고 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코스모스를 ‘길국화’라고 부른다. 길가에 잘 피는 코스모스에 참 잘 어울리는 말이다. 산들바람이 부는 가을길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자면 코스모스라는 거창한 이름보다는 살살이꽃이나 길국화같은 친근하고 예쁜 우리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다.

 

 

참고

1. 이우철, (2005), 『한국 식물명의 유래』, 일조각

2. 박수현, (1999), 『韓國歸化植物原色圖鑑』, 일조각

3. 한태호 외, (2006),『원예식물 이름의 어원과 학명 유래집』, 전남대학교출판부

4. 국립환경과학원, 한국의 외래식물 종합검색 시스템 http://alienplant.nier.go.kr

5. H. G. Liddell, (1975), 『An intermediate Greek-English lexicon : founded upon the seventh edition of Liddell and Scott's Greek-English lexicon』

6. Antonio Jose Cavanilles, (1791),『Icones et Descriptiones Plantarum』, 발렌시아대학 http://www.uv.es/rseapv/Publicaciones/Icones/Cavanilles_Icones_1_Media.pdf

 

* <자연과생태> 2008년 9, 10월 통합호(Vol.17) '내 이름은 왜?' 기사 초고.